인물 | 203 대만 포모사 그룹 왕융칭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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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18-11-15 15:17 조회1,568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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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미주헤어 대표 김영기입니다
#화미주미용경영이야기 203탄
스마일~ 요며칠 비가 오고 날씨가 많이 쌀쌀합니다.
감기조심하세요~
내일은 2019 미용경영트렌드 강의가 있는 날입니다.
감사하게도 제주도, 서울, 전주, 창원, 부산 등등 각 지역에서 신청해주셨네요. 감사합니다.
3명 더 신청가능하다고 합니다.
혹시라도 못 하신 분들 신청 해주세요^^
저번 주 화미주 업의 본질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다고 했는데, 마찬가지로 화미주는 매년 올해의 인물을 정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 인물을 보던 중 고왕융칭 회장의 일대기가 눈에 뛰었습니다. 현대 정주영회장님과 엄청 비슷하신 분입니다.
대만 #포모사그룹 창업주로,
포모사 그룹은 #대만 대기업으로 계열사가 30개 ,
임직원은 10만여명, 매출은 750억 달러에 달합니다. 자산은 9조원에 달합니다.
왕융칭은 1917년 8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의 병환으로 그는 어려서부터 가장이었습니다.
봄과 여름에는 찻잎을 따서 팔고 겨울에는 목탄을 만들어 생계 유지했습니다.
#왕융칭 16세때 자신의 가게를 열었습니다.
그곳에는 이미 30여개의 쌀가게가 있어서 살아남기 버거웠다.
고전하던 그는 쌀의 품질과 서비스를 높이는 방법을 찾아 나섰다.
그때만 해도 추수한 벼를 길에서 말렸기 때문에 잔돌이 섞여 밥할때마다 쌀을 일어 돌을 골라야 했다. 동생들을 동원해 돌을 골라낸뒤 "돌없는쌀" 판매로 멋지게 성공했다
그당시 전부 직접 들고 갔는데 배달서비스를 시작했으며
집집마다 쌀독크기와 식구수를 파악해서 쌀이 떨어질때쯤 미리 갖다줬다.
특히 쌀독에 남은 쌀을 다퍼낸뒤 새쌀을 붓고 그위에 남은쌀을 부어줬다. 묵은 쌀의 변질을 막기위한것이었다.
이처럼 작고 섬세한 배려 덕분에 그는 대만 제일의 갑부가 될 수 있었던 것이겠지요~
이 작은 차이가, 큰 결과를 만들어냅니다. 경영에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그는 돈은 근면성실했고, 돈을 어떻게 쓰는지가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1963년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을 위해 명지공업전문대학을 설립했고, 1976년 비영리 병원을 설립했고, 1980년 생활환경 연구센터, 1985년 포모사의 경영방식을 전수하는 연수지원센터도 설립했습니다.
죽는 순간까지도 소신을 지킨 그의 명언들을 읽어 드리며 오늘 203탄 마무리하겠습니다.
누구나 富를 바라지만 태어난 날부터 가지고 태어난 사람은 없다.
떠날 때 가지고 떠날 사람도 없다.
돈은 하늘이 우리에게 좋은 용도로 사용하라고 잠시 맡긴 것 일 뿐, 누구도 진정 이를 소유할 수 없다.
너희들도 이런 생각으로 충실한 인생을 경영하라.
인생 최대의 가치는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여 사회에 공헌하고 아름다운 비젼을 제시하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목표 덕분에 긴 세월 결코 나태할 수 없었다.